"76년 살았으면 충분하지 않나"…교황, 재임 중 고국 안간 이유는
아르헨티나 정치 분열 속 정치공방 소재 전락 우려 감안한듯
재임 후반기엔 방문 계획 있었지만 일정 문제로 불발되기도
- 권영미 기자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황으로 재임한 12년 동안 한 번도 고국을 찾지 않은 것에 대해 아르헨티나인들이 아쉬움을 나타내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2일(현지시간) 전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좌우가 극단으로 대치하는 조국에서 자신의 방문이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될까 봐 교황이 가지 않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르헨티나 국민 사이에선 "재위 중 68개국을 방문했는데 왜 고국엔 오지 않았나"라고 서운함과 함께, "어떤 대통령도 '내가 교황을 데려왔다' 식으로 자기 영향력을 과시하려는 것이 싫었을 것"이라는 이해가 함께 나온다. "아르헨티나만의 교황이 아니라 '세계의 교황'이었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지만 일부는 "그래도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본명이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였던 프란치스코 교황, 12년 전에는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이었던 그는 2013년 베네딕토 16세의 자리를 잇게 된 콘클라베를 위해 아르헨티나를 떠났다. 하지만 그는 취임 후 첫 해외 방문으로, 또는 최소한 1년 내 고국을 방문한 베네딕토 16세나 요한 바오로 2세 등 전임과는 달리 재임 중 고국을 한 번도 가지 않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재임 중 아르헨티나 대통령들과 긴장된 관계를 유지했다. 교황이 되기 전이지만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 시절, 그는 동성 결혼 합법화를 놓고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전 대통령과 충돌했지만, 교황이 되자 화해했다. 또한 그는 또 다른 전 대통령인 마우리시오 마크리의 우경화 정책을 반대했다. 2020년에는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의회에서 추진한 낙태 합법화에 격렬하게 반대했다.
아르헨티나의 현 대통령인 하비에르 밀레이는 대통령으로 선출되기 전, 사회 정의를 옹호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멍청이"라고 부르며 자주 모욕했다. 그는 이후 사과했고, 두 사람은 작년 바티칸에서 만났다. 밀레이는 오는 26일 프란치스코 교황 장례식에 참석할 예정이다.
교황 자격으로 아르헨티나를 방문하는 것에 대해 인터뷰 질문 등을 받으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르헨티나에서 76년을 보냈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라고 자주 농담처럼 말했다고 NYT는 전했다. 교회 관계자들은 교황이 바티칸에서도 아르헨티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는 점을 자주 강조했다.
한 종교 전문가는 자신이 프란치스코 교황과 여러 차례 대화했는데 그 결과 아르헨티나에 가지 않은 이유가 좌파와 우파 사이의 "악명 높은 정치적 분열"에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다른 전문가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을 기피한 이유가 초기에는 국내 문제였을 수도 있지만, "나중에는 베르고글리오보다는 프란치스코로 더 기억되기를 원했던 것 같다"고 했다.
교황과 긴밀한 관계였던,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이탈리아 주재 아르헨티나 대사를 지낸 변호사 로베르토 카를레스는 교황이 세계 가톨릭 공동체를 위한 행동이 아르헨티나의 정치적 시각으로 종종 왜곡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고 전했다.
카를레스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재위 후반에는 아르헨티나에 가고 싶어 했다면서 "돌아오고 싶어 하는 마음을 느꼈다. 잘 풀리지는 않았지만, 나는 교황이 아르헨티나로 돌아오고 싶어 했다는 것을 안다"고 말했다.
실제로 교황은 2017년 칠레 방문길에 아르헨티나를 방문할 계획이었지만, 일정 충돌로 연기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2023년에 아르헨티나 매체 '인포바에'에 "아르헨티나 방문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전혀 아니다. 방문이 계획되어 있고, 나는 그 기회에 대해 열려 있다"고 밝혔다.
가장 최근인 지난해 교황은 아르헨티나 방문에 대한 관심을 공개적으로 표명했지만, 자신의 방문이 정치적으로 어떻게 해석될지에 대한 우려 역시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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