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과 경쟁 사이…동남아 화상 자본의 '고향' 中 활용법[동남아시아 TODAY]
(서울=뉴스1) 김종호 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 = 지난 2월 10일 연재('꽌시'에 가려진 동남아시아 화교 자본에 대한 오해)에서 소개한 동남아시아의 화상 자본은 단순한 이주민의 경제활동을 넘어 세계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독자적인 흐름과 네트워크를 형성해 온 독특한 사례로 주목받는다.
특히 이들의 자본 형성과 성장 과정에서 중국과의 관계는 가장 핵심적인 축으로 작동해 왔다. 전 세계에는 수없이 많은 이주 자본이 각자의 네트워크를 형성해 왔지만, 화상 자본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그들의 고향이 세계 최대 경제라는 사실이다. 1980년대 이후 지금까지 동남아 화상 자본의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는데, 여기에는 중국과의 관계가 핵심이다.
1978년 중국의 개혁개방은 동남아시아 화상 자본에 있어 전환점이 되었다. 냉전 시기 동안 동남아 현지 독립 국가의 민족주의 경제 정책, 혹은 외국인 지분 제한과 같은 제도적 제약으로 인해 화상들은 자신들의 민간 자본을 위축시키거나 이주 국가의 경제적 틀 속에서 한계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덩샤오핑이 실시한 개혁개방은 '고향'으로의 복귀를 허용했을 뿐 아니라, 한계에 직면한 그들에게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제공했다. 이는 중국 정부가 혈연과 지연, 방언 공동체로 맺어진 화상 공동체를 전략적으로 활용하고자 했던 정책적 접근과 맞물리며, 동남아 화상들에게는 다시금 자본의 출구이자 투자 대상지로서의 중국이 열리게 된 계기였다. 덩샤오핑이 개혁개방 직후 설정한 경제특구(션전, 주하이, 샤먼, 샨터우)가 모두 동남아 화상들의 고향인 광둥과 푸젠성에 집중되어 있는 이 그 반증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실제로 많은 화상 기업이 중국 진출에 있어 자신들이 속한 방언 그룹이나 고향 지역과 관련된 성 혹은 시를 중심으로 투자를 시작했다. 예컨대, 푸젠성 푸칭(福清) 출신의 인도네시아 화상이자, 최대 기업 살림그룹의 공동창업자로 유명한 린원징(林文鏡)은 자신이 속한 방언 집단과 지역 인맥을 활용해 푸칭 지역에 '룽차오 경제기술개발구(融僑經濟技術開發區)'를 조성하고, 1989년 룽차오그룹(融僑集團)을 설립하였다. 이를 기반으로 부동산, 항만, 호텔, 금융 등 다방면에 걸쳐 대규모 사업을 전개했다.
특히 그는 시진핑 현 주석과의 특별한 인연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린원징은 중국 진출 과정에서 1990년대 푸젠성의 당서기였던 시진핑과 안면을 익힌 바 있었는데, 이후 시진핑이 중앙 정계에 진출하여 부주석이 되었을 때 린원징에게 생일 축전을 보내거나 푸젠성에 방문하면 일부러 그를 만나는 등의 친분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러한 공식적으로 드러난 사적 관계는 다른 외국계 기업들이 추구하기 어려운 화상들만의 사회적 자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동남아 화상들의 중국 진출은 단순한 해외투자가 아니라, 혈연과 인맥, 지역 정체성을 중심으로 구성된 '사회적 자본'을 경제 자본으로 전환하는 독특한 구조를 보여준다.
중국 정부 역시 화상 자본을 경제발전의 전략적 수단으로 인식하고, 경제특구 지정과 세제 혜택, 행정적 편의 제공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이들을 유치하였다. 이 가운데 광둥성의 주강삼각주(珠江三角洲) 지역은 화상 자본의 주요 진입지로 부상했으며, 선전, 주하이, 샨터우와 같은 경제특구는 화상 자본의 초기 성공을 가능케 한 주요 거점이 되었다.
주강삼각주는 이후 홍콩, 마카오, 타이완을 연결하는 광역 경제권으로 확장되었고, 여기에 싱가포르를 비롯한 동남아 화상 네트워크가 결합하면서 남중국해를 연결하는 '남방경제권'이 형성되었다. 이 경제권은 단순한 자본 이동뿐 아니라 물류, 데이터, 산업단지까지 통합하는 경제적 실체로 발전해 왔을 뿐 아니라 자유무역지대로 발전해 나가는 방향이 논의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동남아 화상 자본은 중국 내에서 부동산, 금융, 도소매업, 식음료, 의료기기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었다. 특히, 태국의 CP 그룹, 필리핀의 SM 그룹과 졸리비, 말레이시아의 쿽 가문 그룹, 싱가포르의 윌마(Wilmar), 동남아 최대 민간 은행인 OCBC 등은 중국 전역에 걸쳐 사업망을 확장하였다. 이들은 대부분 자국 내에서 성공을 거둔 사업 모델을 중국에 이식하거나, 홍콩이나 타이완을 거점으로 삼아 중국 내륙으로 점진적으로 확장해 가는 방식을 취하였다.
중요한 점은 이들이 중국 내 경쟁 기업들과 달리 단기 수익보다는 장기적인 네트워크 형성과 고향과의 정서적 연대를 기반으로 성장 전략을 수립했다는 점이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이어진 동남아 화상과 중국과의 관계는 중국의 부상과 맞물리면서 화상들에게 중요한 성장의 계기를 제공해 주었다. 많은 외국계 다국적 기업들이 21세기 중국의 경제성장과 함께 성장한 현지 기업과의 경쟁을 견디지 못한 채 폐업하고 철수하여 동남아시아 및 인도와 같은 대체 시장을 찾고 있는 반면, 동남아시아 화상들은 여전히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두 지역 사이의 네트워크를 유지해 오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동남아 화상 기업들의 특징은 중국 진출 이후 현지 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협력과 유대는 영원한 상생 관계로만 작동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2010년대에 들어 중국 자체의 산업 역량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특히 농업, 경공업, 유통, 금융, 디지털 산업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 산업 분야에서 동남아 화상 자본과 중국 본토 자본 간의 직접적 경쟁이 불가피해졌다. '중국-아세안 자유무역지대(ACFTA)'가 본격화되면서 관세 장벽은 낮아졌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중국의 저가 상품이 동남아 시장에 대량 유입되는 결과를 낳았다. 기존에 유통과 노동집약적 제조업을 주도하던 화상 기업들은 가격 경쟁에서 밀려나거나, 중소기업의 경우 도산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게다가 지난 연재에서도 밝혔듯이 기존 화상 기업들의 대부분은 노동집약형 산업이나 전통적 유통・도소매에 집중되어 있어 고부가가치 산업, 특히 ICT, 반도체, AI, 바이오와 같은 기술 중심의 산업 전환에 취약했다. 그 원인으로는 자본 집중도가 높고,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 하이테크 산업 진출의 어려움과 함께, 여전히 1세대 창업자 중심의 폐쇄적 경영 구조가 변화에 둔감하다는 점이 지적된다.
하지만 최근에는 새로운 전환의 가능성도 나타나고 있다. 동남아시아의 신세대 화인 경영자들은 미국, 유럽 등에서 경영 및 과학기술 교육을 받고 귀국해 보다 투명하고 혁신 지향적인 경영방식을 추구하고 있으며, 디지털 플랫폼 기반의 스타트업과 유니콘 기업을 설립하며 새로운 유형의 화상 자본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과거의 혈연·지연 중심의 폐쇄적 구조를 넘어서 글로벌 네트워크와 융합된 개방형 자본주의로의 전환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동남아시아 시장을 테스트 베드로 삼아 성공한 뒤 중국과의 사회적 연계를 자산으로 '대륙' 진출을 꾀하는 경우도 많아 중국 진출을 원하는 벤처 캐피털(VC)들의 파트너로 부상하기도 한다.
요컨대, 동남아 화상 자본은 중국이라는 '사회적 자산'과 동남아시아라는 '경제적 현장' 사이를 연결하는, 역사에 기반을 둔 네트워크 자본이다. 이들은 이주민으로 시작했지만 본국으로의 귀환과 재진출을 통해 글로벌 자본의 중요한 한 축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향후 동남아 화상 자본의 성패는 중국과의 '협력과 경쟁'을 얼마나 정교하게 조율하느냐에 달려 있으며, 주강삼각주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남방경제권의 변화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이 복합적인 구조 속에서 화상 자본은 여전히 아세안과 중국을 잇는 가장 실용적이고도 정치적으로 민감한 연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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