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후보들 '원전 비중' 두고 인식차…李 "보조 역할" 金 "비중 확대"
[6·3 대선 공약 점검]⑩에너지…"첨단산업, 안정적 전력공급 필요" 공감
원전 활용 비중엔 인식 차…전문가 "에너지 공약, 현실성·구체성 결여"
- 이정현 기자
(세종=뉴스1) 이정현 기자 = 대선 후보들은 인공지능(AI)·반도체 등 미래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전략산업이 엄청난 전력공급 없이는 지탱할 수 없다는 사실에 공감하면서도, 주력 에너지원인 원전의 활용 비중을 놓고는 인식 차를 보였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재생에너지 중심으로의 전환 과정에서 '원전은 보조 역할'로서의 활용'을,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이전 문재인 정부 시절 탈(脫)원전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원전 중심'의 현 정부 에너지정책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이재명 후보는 '기후위기 대응 및 산업구조의 탈탄소 전환'을 목표로 내걸고, 선진국 책임에 걸맞은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 수립,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전환 가속화, 경제성장을 위한 '에너지고속도로' 구축 등을 이행 방법으로 내걸었다.
특히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보조 역할로서 원전의 필요성을 인정한 점이 눈에 띈다. 이전 문재인 정부에서의 급진적인 '탈원전' 정책 기조에서 한발 물러난 것으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라는 목표는 흔들림 없이 추진하되 원전 비중을 단계적으로 축소한다는 방침을 이어간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 후보는 지난 18일 처음 열린 21대 대선 후보자 초청 경제분야 TV토론회에서 "에너지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원전도 필요하지만 위험성과 폐기물 처리 문제를 고려해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점진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주장의 논거로는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같은 사고를 보라. 대한민국 원전이 영원히 안전하다는 보장은 없다"고 원전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다만 이 후보 측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공약에서 원전 관련 언급은 제외한 것으로 알려져 그 이유에도 관심이 쏠린다. 실제 이 후보의 경제·산업 영역을 포함해 어느 곳에도 원전 관련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기조에서 벗어나 '절충형 노선'을 택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 후보가 중앙선관위에 제출한 에너지분야 10대 공약을 보면 △2040년까지 석탄화력발전 폐쇄 △햇빛·바람 연금 확대 △농가 태양광 설치로 주민소득 증대 및 에너지 자립 실현 △태양광 이격거리 규제 및 재생에너지 직접구매(PPA)개선 등을 통해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전환을 이루겠단 구상이다.
햇빛바람연금은 재생에너지 발전에 공공투자를 함으로써 정부가 지분을 확보하고, 지분수익을 전 국민에게 기본소득 방식으로 배당하는 것이다.
이런 정책 전환의 첫 사례로는 신안군을 들 수 있다. 신안군은 오는 2030년까지 태양광 1.8기가와트(GW), 해상풍력 8.2GW를 계획하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2030년 신재생 목표 71.5GW의 14%에 해당된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즉 불안정한 공급 문제를 이유로 '원전 중심'의 에너지정책을 강조하고 있다. 이전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이 후보가 내건 '재생에너지 중심 전환'이라는 에너지정책 공약에 공세를 퍼붓고 있다.
기저전원으로서 안정적인 공급은 물론, 비용 측면에서도 훨씬 저렴한 원전을 굳이 배제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김 후보는 원전 확대 방침을 담은 'AI·에너지 3대 강국' 공약을 10대 공약 중 두 번째로 제시했다. 대형 원전 6기 건설을 차질 없이 진행하고, 한국형 소형모듈원전(SMR) 상용화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원자력 발전 비중을 현행 32.5%에서 60%(대형원전 35%·SMR 25%)까지 키우겠다는 목표다.
액화천연가스(LNG)와 석탄, 신재생에너지 등은 kWh(킬로와트시)당 발전 단가가 120원 이상인데, 원전 단가는 75.7원에 그친다. 이 때문에 원전 비중을 늘리면 산업용 전기료를 인하할 수 있다는 게 김 후보의 설명이다. 김 후보 측은 산업용 전기료를 가정용 전기료 수준으로 내려 기업 부담을 낮추겠다고도 약속했다.
김 후보는 경제분야 첫 대선 후보자 초청 TV토론회에서 "AI 시대 국가경쟁력의 핵심은 전력 확보"라며 "풍력·태양광은 발전 단가가 비싸고 불안정하다. 안전하고 저렴한 원전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후보는 또 "저도 재생에너지를 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라면서 "원전 비용이 풍력발전에 비해 8분의 1밖에 안 되고, 태양광에 비해 6분의 1밖에 안 되는데 싸고 안전한 원전을 왜 안 했나"라고 이 후보에게 따져 묻기도 했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도 김 후보의 입장에 뜻을 같이했다.
이 후보는 TV토론회에서 "(이재명 후보가) 강조해 온 서남해안 풍력 발전 같은 경우 kW(킬로와트)당 균등화 발전 단가가 300원인 반면 원전은 50∼60원"이라며 "이재명 후보가 환경론자의 말에 휘둘려 국가의 대사를 판단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이 후보는 에너지정책 공약으로 원전 비중 확대와 산업에너지부 신설 공약을 내걸었다.
21대 대선 후보들이 '재생에너지'와 '원전'을 주요 에너지원으로서 강조하고 있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현실성 있는 계획은 찾아볼 수 없다는 게 전문가 지적이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유승훈 교수는 뉴스1과의 통화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 측이 얘기하는 원전 비중을 늘리겠다는 공약은 현실성이 없다"면서 "이미 국내 원전 이용률은 최고 수준이다. 더 이상 가동 중인 원전의 활용도를 높이면 안전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했다.
유 교수는 "그러면 원전을 새로 지어야 한다는 얘기인데, 원전 하나 짓는데 25년 이상이 걸린다"며 "차기 정부 임기 내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유 교수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공약에 대해서도 방향성은 맞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 발생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다고 꼬집었다.
유 교수는 "원전 한 기를 건설하려면 25년이 걸리는 상황에서 재생에너지에 더 집중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긴 하다"면서도 "다만 문제는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이라고 말했다.
그는 "비용 부담의 방식과 주체, 또 해결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공약이 나와야 하는데, 재생에너지를 늘려야 한다는 막연한 당위성만 열거해 놓은 수준"이라며 "현실성이 굉장히 결여돼 있다"고 했다.
전반적으로 에너지 공약이 지난 대선과 총선 때 내놨던 공약들이 반복되고 있고, 구체성이 떨어져 아쉽다는 지적도 나온다.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과 2035년 이후 감축 로드맵 수립' 공약 등의 경우에도 구체적인 수치는 제시되지 않았다.
민주당은 지난해 22대 총선 때 2035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52%로 제시한 바 있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은 "2035년 감축 로드맵을 과학적 근거에 따라 만들겠다는 건 윤석열 정부조차 밝혀왔던 것으로, 이 정도 공약은 '아름답고 깨끗한 세상을 만들자'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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